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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lled
JOOEUN KIM, 2026
What if people can’t spill the tea without help?
사회는 대면 소통에서 오는 우연한 마찰과 감정 소모를 극도로 기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AI가 매끄럽게 다듬어준 문장에 길들여졌고, 기술의 개입 없는 '날 것의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 자체가 희귀해졌다.
스스로 감정을 다루고 타인과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극단적인 대면 기피 현상은 결국 오프라인 소통마저 기술에 위탁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어떻게든 지워버리기 위해 대화 중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덮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대화의 기류를 감지해 갈등을 화학적으로 잠재우는 ‘Spilled’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대화 중 아주 사소한 침묵이나 불안이라도 발생하면, 어떻게든 더 빨리 컵에 손목을 묶고 신경 안정 가스를 들이마시며 불안을 회피했다. 소개팅할 때, 친구를 만날 때, 회사 면접을 볼 때와 같은 대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이 동일하게 시스템 아래 묶여 있는가’이다. 디바이스를 착용하지 않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변수 덩어리가 되는 것과도 같다.
어떤 공간에 가도 Spilled를 가운데 두고 각자의 손목을 결박한 채 마주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대면 소통의 불안을 마취해 줄 Spilled가 있다면 무조건 얼굴과 손에 착용하고 테이블에 앉기 때문에, 이 차가운 디바이스는 점차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필수적이고 일상적인 에티켓으로 확산되고 있다.